왓챠에서 다시 봤다. 처음 봤을 때는 그냥 예쁜 첫사랑 영화구나 싶었는데, 두 번째로 보면서 이 영화가 꽤 영리하게 만들어진 영화라는 걸 알게 됐다. 2012년 이용주 감독이 연출한 작품으로 엄태웅, 이제훈, 한가인, 수지, 조정석이 출연한다. 411만 관객을 동원했고, 이 영화가 개봉하던 해에 수지와 조정석이 대중에게 처음으로 강하게 인식된 계기가 됐다. 스무 살의 승민과 서연, 그리고 15년 뒤 서른다섯의 두 사람. 건축학개론 수업에서 시작된 인연이 집 한 채를 짓는 동안 다시 흔들린다.

이제훈과 수지가 만드는 것 - 과거 장면이 더 잘 만들어진 이유
이 영화는 현재 시점과 과거 시점을 교차하는 구조인데, 솔직히 말하면 과거 장면이 훨씬 더 잘 만들어졌다. 이제훈이 연기한 스무 살 승민과 수지가 연기한 서연이 함께 있는 장면들이 이 영화의 핵심이다. 현재 장면에서 엄태웅과 한가인이 나쁜 건 아닌데, 과거의 설렘과 어색함을 현재로 이어받기가 구조적으로 어려울 수밖에 없다. 그 15년의 공백이 현재 장면을 아무리 잘 만들어도 과거 장면과 같은 온도를 만들기 어렵게 한다. 그게 이 영화의 구조적 선택이기도 하고, 동시에 한계이기도 하다.
이제훈의 승민은 이 영화에서 정말 잘 맞아 떨어지는 캐스팅이다. 좋아하면서도 표현 못하고, 오해가 생겨도 해명 못하고, 그냥 혼자 끙끙 앓다가 멀어지는 그 어리숙함이 이제훈의 몸에서 자연스럽게 나온다. 수지는 이 영화가 데뷔에 가까웠는데, 연기 경험이 많지 않았음에도 서연이라는 인물의 묘한 거리감을 의외로 잘 담아냈다. 서연이 승민에게 어느 정도까지 마음을 열고 어느 정도를 닫아두는지가 이 영화의 긴장감인데, 수지가 그 경계를 나름대로 잘 유지했다.
현재 넷플릭스, 왓챠, 티빙, 쿠팡플레이에서 구독으로 볼 수 있고, 웨이브에서는 유료 대여도 가능하다. LG U+ TV 셋톱박스에서도 VOD로 검색해볼 수 있다. 서비스 여부는 계약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 있으니 최신 여부는 직접 앱에서 확인하는 게 정확하다.

조정석의 납뜩이와 '기억의 습작'
이 영화에서 가장 오래 기억에 남는 두 가지를 꼽으면 조정석이 연기한 납뜩이와 OST '기억의 습작'이다. 납뜩이는 승민의 절친한 친구로, 이 영화에서 유일하게 자기 감정에 솔직한 인물이다. 승민이 끙끙 앓는 동안 납뜩이는 그냥 좋으면 좋다고 말한다. 그 직선적인 캐릭터가 승민의 소심함을 더 도드라지게 만들고, 동시에 영화의 무거운 감정을 환기시켜준다. 조정석이 이 영화로 얼마나 많은 주목을 받았는지를 생각하면, 이 캐릭터 설계가 얼마나 영리했는지 알 수 있다.
'기억의 습작'은 전람회의 노래인데, 이 영화에서 그 노래가 흐르는 순간이 영화 전체의 감정을 응축한다. 집에서 혼자 보다가 그 장면에서 잠깐 멈춘 적이 있다. 음악이 장면 위에 얹히는 게 아니라 장면이 음악을 위해 존재하는 것 같은 느낌. 영화 음악이 이렇게 작동할 때 그 영화가 얼마나 강해지는지를 잘 보여주는 사례다. 이 노래를 좋아하거나 기억이 있는 사람에게는 이 영화가 한 층 더 깊이 들어올 것이다.

첫사랑을 낭만화하는 방식에 대한 개인적인 생각
이 영화를 보면서 계속 이런 질문이 맴돌았다. 첫사랑은 왜 항상 이렇게 아름답게 기억되는 걸까. 현실에서 스무 살의 첫사랑이 이 영화처럼 서정적이고 감각적이었던 사람이 얼마나 될까. 아마 대부분은 어설프고 민망하고 우스웠을 것이다. 근데 이 영화를 보면서 그게 내 이야기처럼 느껴지는 이유는, 기억이 원래 그렇게 작동하기 때문인 것 같다. 실제로 어땠는지보다, 지금 내가 그 시절을 어떻게 기억하고 싶은지가 기억을 만든다. 이 영화가 공감되는 건 그래서라고 생각한다. 이 영화가 첫사랑의 실제 모습을 담아서가 아니라, 첫사랑을 기억하는 방식을 담았기 때문에.
아쉬운 점도 있다. 이 영화는 완전히 승민의 시점에서 진행된다. 서연이 그때 무슨 생각이었는지, 15년 뒤 왜 승민에게 집을 부탁하러 왔는지가 충분히 그려지지 않는다. 서연이라는 인물이 승민의 기억과 감정을 위한 도구처럼 쓰이는 부분이 있어서, 서연의 입장에서 이 이야기를 읽으려 하면 빈 곳이 생긴다. 그 부분은 이 영화의 한계라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2012년 한국 로맨스 영화 중에서 이 영화만큼 오래 기억에 남는 작품이 많지 않다는 건 사실이다. 위에 언급한 플랫폼 구독 중이라면 한 번쯤 다시 틀어볼 만하다. 처음 봤을 때와 두 번째가 다르게 읽히는 영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