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97년 작품인데 왓챠에서 다시 꺼내봤다. 처음 봤을 때는 천재 소년의 성장 이야기 정도로 기억하고 있었는데, 다시 보니까 이 영화가 실제로 무엇에 대한 영화인지가 더 선명하게 보였다. 굿 윌 헌팅은 재능에 대한 영화가 아니다. 상처를 인정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그리고 그게 왜 필요한지에 대한 영화다. 맷 데이먼과 벤 애플렉이 각본을 쓰고 맷 데이먼이 주연을 맡았다. 로빈 윌리엄스가 심리치료사 숀 역으로 조연상을 받았고, 두 사람의 각본도 아카데미 수상작이다. 수상 이력을 나열하는 게 이 영화를 설명하는 좋은 방법은 아니지만, 그만큼 많은 사람들이 이 영화에서 뭔가를 건져갔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윌이 천재라는 사실이 이 영화의 핵심이 아닌 이유
윌 헌팅(맷 데이먼)은 MIT 복도 칠판에 걸린 대학원 수준의 수학 문제를 청소하다가 풀어버린다. 이 장면이 영화 초반에 나오는데, 사실 이후로 그의 수학적 재능이 구체적으로 다뤄지는 장면은 별로 없다. 영화가 관심을 두는 건 그 재능이 아니라, 그 재능을 가진 사람이 왜 그걸 쓰지 않으려 하는가다. 윌은 자기를 지키기 위해 모든 것을 먼저 공격하거나 차단하는 사람이다. 상담사들을 가지고 놀고, 관계가 깊어지기 전에 먼저 발을 뺀다. 천재라서 그런 게 아니라, 어린 시절 학대받은 경험이 그 방어 기제를 만들었다.
이 영화가 흥미로운 건 그 방어 기제를 부수는 과정을 드라마틱하게 그리지 않는다는 점이다. 숀(로빈 윌리엄스)은 윌에게 강의하지 않는다. 설득하거나 다그치지도 않는다. 그냥 곁에 있는다. 그리고 자기 이야기를 한다. 윌이 그걸 처음에 무기로 쓰려다가 실패하는 장면에서 이 영화의 진짜 심리전이 시작된다. 두 사람이 맞붙는 게 아니라, 숀이 먼저 무장해제를 보여주는 방식이다.

로빈 윌리엄스가 이 역할에서 한 것
로빈 윌리엄스 하면 보통 에너지가 넘치는 코미디를 먼저 떠올리는데, 이 영화에서 그는 정반대로 간다. 숀 맥과이어는 조용하고 느린 사람이다. 윌 앞에서 절대 서두르지 않는다. 그 절제가 이 배우가 가진 에너지를 오히려 더 잘 보이게 만든다는 게 역설적이다. 특히 공원 벤치에서 윌에게 "네 잘못이 아니야(It's not your fault)"를 반복하는 장면 - 이 장면이 이 영화에서 가장 많이 언급되는 이유가 있다. 말의 내용보다 그 말을 전달하는 방식, 속도, 눈빛이 장면 전체를 만든다. 대사만 따로 읽으면 평범하다. 그 맥락과 연기가 합쳐졌을 때 비로소 작동하는 장면이다.
맷 데이먼의 연기도 주목할 만하다. 윌은 방어적이고 날카롭지만, 그 날카로움 아래에 뭔가가 있다는 걸 계속 내비친다. 완전히 닫혀 있지 않다는 걸 관객은 알고 있는데, 그게 보이면서도 안 보이는 방식으로 연기하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다. 스물일곱 살의 맷 데이먼이 이걸 해냈다는 게 지금 다시 봐도 놀랍다.
계급과 기회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한 영화
이 영화를 단순히 개인의 성장 이야기로만 읽으면 놓치는 게 있다. 윌이 사는 동네, 그의 친구들, 그가 MIT에서 하는 일 — 이 모든 맥락이 의도적으로 배치되어 있다. 윌은 같은 동네 출신 친구들과 몰려다니는데, 그 친구 중 처키(벤 애플렉)가 윌에게 하는 말이 이 영화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대사 중 하나다. "10년 후에도 네가 옆집에 살고 있으면 나는 진짜 화날 거야." 이 대사는 단순한 응원이 아니다. 이 동네에서 태어나면 이 동네에서 살다 간다는 현실에 대한 이야기다. 윌의 재능은 그 현실에서 빠져나갈 수 있는 출구인데, 그가 그걸 쓰지 않으려 한다는 게 이 영화의 비극적인 설정이기도 하다.
1997년 미국의 계급 이동이 가능하다는 믿음이 아직 살아있던 시대의 영화다. 지금 이 영화를 보면 그 믿음 자체가 조금 다르게 읽히는 부분도 있다. 윌이 결국 자기 재능을 쓰기로 결정하는 과정이 개인의 심리적 성장 안에서만 해결되는 구조라는 점에서, 시대의 낙관주의가 반영된 영화라는 생각도 든다. 그게 이 영화를 폄하하는 말이 아니라, 영화가 만들어진 맥락을 읽는 방식이다.

지금 다시 봤을 때 다르게 보이는 것들
처음 봤을 때는 윌과 숀의 관계에 집중했는데, 다시 보니 숀이라는 인물 자체가 더 입체적으로 보였다. 그는 완성된 사람이 아니다. 아내를 잃은 후 삶이 멈춰 있고, 윌을 상담하는 과정이 그에게도 무언가를 건드린다. 두 사람이 서로를 고치는 게 아니라 서로의 존재로 인해 각자 뭔가를 풀어내는 구조인데, 처음 볼 때는 그게 잘 안 보였다. 영화가 그걸 드러내는 방식이 워낙 조용하고 느리기 때문이다.
엘리엇 스미스의 음악도 다시 들으니 더 귀에 들어왔다. 특히 'Miss Misery'가 엔딩 크레딧에 깔리는 방식 - 윌이 차를 몰고 어딘가로 떠나는 그 장면과 합쳐졌을 때의 감각이 영화가 끝난 뒤에도 오래 남는다. 해결된 것 같으면서도 해결된 게 아닌 것 같은, 그 여운을 음악이 정확하게 붙잡는다.
이 영화와 잘 맞는 사람 / 이 영화와 맞지 않는 사람
빠른 전개나 강한 자극을 원하는 사람에게는 답답할 수 있다. 이 영화는 느리다. 감정이 폭발하는 순간보다 조용히 쌓이는 순간이 훨씬 많다. 근데 그 느림이 이 영화의 방식이고, 그게 맞는 사람에게는 꽤 오래 남는 영화가 된다. 특히 자기 자신을 방어하는 데 익숙한 사람, 혹은 그런 사람 옆에 있어본 사람에게는 다른 방식으로 읽힐 수 있다.
현재 넷플릭스, 왓챠, 쿠팡플레이에서 모두 구독으로 볼 수 있다. 혼자 늦은 밤에 조용히 보기에 맞는 영화고, 다 보고 나서 한동안 머릿속에 남아있는 장면이 생기는 종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