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왓챠에서 찾아봤다가 없어서 결국 웨이브에서 대여해서 봤다. 3시간 9분짜리 영화를 한 번 틀면 끝까지 보게 된다는 게 이 영화의 첫 번째 특징이다. 1999년 작품이고, 프랭크 다라본트 감독이 스티븐 킹의 동명 소설을 각색했다. 쇼생크 탈출과 같은 감독, 같은 원작자의 조합이라 비교가 자연스럽게 따라붙는 영화인데, 두 작품을 나란히 놓으면 다라본트가 스티븐 킹의 어떤 부분을 일관되게 좋아하는지가 보인다. 극한의 상황 속에서 인간이 어디까지 선해질 수 있는가, 그리고 그 선함이 세상을 바꾸는가. 그린 마일은 그 질문에 쇼생크보다 훨씬 어두운 답을 내놓는다.
존 커피라는 존재가 만드는 불편함

존 커피(마이클 클라크 던컨)는 처음 등장할 때부터 뭔가 맞지 않는다. 덩치는 압도적으로 크고, 죄목은 어린 쌍둥이 여아 살해인데, 눈빛은 겁먹은 아이 같다. 이 불일치가 영화 내내 이어지는 긴장의 원천이다. 그는 초자연적인 치유 능력을 가졌고, 고통을 느끼는 사람 옆에 있으면 그 고통을 자기 안으로 흡수한다. 그 능력이 어디서 왔는지, 왜 그런지는 영화가 설명하지 않는다. 설명하지 않는다는 선택 자체가 이 캐릭터를 더 묵직하게 만든다.
내가 이 영화를 보면서 가장 불편했던 건 존 커피의 능력이나 기적 자체가 아니었다. 그가 무죄라는 사실이 점점 명확해지는데도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는 것이다. 폴(톰 행크스)을 비롯한 간수들은 그걸 알면서도 막을 수 없다. 시스템이 틀렸다는 걸 알면서도 그 안에 있는 사람들이 할 수 있는 게 없는 상황 그게 이 영화가 진짜로 불편하게 만드는 지점이다. 그 불편함이 3시간 내내 쌓인다.
톰 행크스가 이 역할에서 하는 것
폴 에지컴은 선한 사람이다. 그게 이 영화의 비극이다. 그는 사형수들을 인간적으로 대하려 하고, 부당한 상황에 분노하고, 존 커피에게 미안함을 느낀다. 그런데 그 선함이 아무것도 구하지 못한다. 톰 행크스는 이 인물의 무력함을 과하지 않게 표현한다. 분노를 폭발시키거나 오열하는 장면이 거의 없다. 대신 안에서 조여드는 걸 표정과 눈빛으로 담는다. 특히 후반부로 갈수록 폴의 얼굴에 쌓이는 표정들이 이 영화의 감정을 대부분 짊어진다.
마이클 클라크 던컨의 존 커피도 빼놓기 어렵다. 신체적 압도감과 정서적 여린함을 동시에 구현하는 게 쉬운 일이 아닌데, 그 두 가지가 화면에서 자연스럽게 공존한다. 그가 어둠을 무서워하는 장면, 처형을 앞두고 두려움을 드러내는 장면들 거기서 이 배우가 만들어내는 감각이 이 영화를 단순한 판타지 드라마 이상으로 끌어올린다.
1930년대 미국 남부가 배경인 이유
이 영화의 배경이 1935년 대공황 시기 루이지애나 사형수 감방이라는 건 의도적인 선택이다. 흑인 남성이 백인 어린 여아들의 살해범으로 지목되고 재판도 제대로 받지 못한 채 사형을 앞두고 있다. 이걸 그냥 이야기의 설정으로만 읽으면 영화의 절반을 놓치는 것이다. 미국 남부의 인종차별적 사법 시스템이 만들어낸 구조 안에서 존 커피 같은 존재가 어떤 처지에 놓이는지 그게 이 영화가 판타지라는 형식을 빌려서 하는 이야기다. 초자연적 능력을 가진 인물을 통해 오히려 현실의 부조리가 더 선명하게 드러나는 방식이다.
이 맥락을 읽으면 존 커피가 왜 끝까지 세상에 분노하지 않는지도 다르게 보인다. 그가 마지막에 폴에게 하는 말 세상 사람들의 고통이 너무 크다는 것, 그 고통을 더 이상 받아들이고 싶지 않다는 것은 단순한 체념이 아니다. 그 말이 이 영화 전체의 무게를 담고 있다.

189분을 이끌어가는 것들
3시간이 넘는 영화인데 지루하다는 생각이 별로 들지 않았다. 그 이유를 생각해보면, 영화가 존 커피 외에도 사형수 감방의 여러 인물들을 꽤 충실하게 만들어뒀기 때문이다. 에두아르 들라크루아와 그의 쥐 미스터 징글스 이야기, 악랄한 간수 퍼시의 행동, 와일드 빌의 존재감 이것들이 중심 이야기와 교차하면서 리듬을 만든다. 특히 에두아르의 처형 장면은 이 영화에서 가장 잔인한 장면인데, 그 잔인함이 강조하는 게 폭력 자체가 아니라 인간이 얼마나 잔인해질 수 있는가다. 퍼시라는 인물이 왜 이 영화에 필요한지가 그 장면에서 명확해진다.
토마스 뉴먼의 음악도 이 영화의 속도를 조율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과하게 감정을 밀어붙이지 않으면서 화면의 온도를 유지하는 방식이다. 쇼생크 탈출에서도 비슷한 역할을 했는데, 다라본트와 뉴먼의 조합이 이 장르에서 얼마나 잘 맞는지가 두 영화를 통해 확인된다.
이 영화가 남기는 것
다 보고 나서 한동안 폴의 마지막 독백이 머릿속에 남아 있었다. 존 커피를 처형한 이후 수십 년을 더 살아가야 하는 사람의 이야기. 그게 벌인지 선물인지 모르겠다는 그 말. 이 영화가 해피엔딩도 새드엔딩도 아닌 이유가 거기 있다. 선한 사람이 좋은 일을 했는데, 그 결과가 무거운 짐이 되어 남는 이야기. 깔끔하게 정리되지 않는다는 게 이 영화가 보고 나서도 오래 떠오르는 이유 같다.
현재 한국에서는 구독 스트리밍 서비스에 없고, 웨이브에서 대여로 볼 수 있다. 길이 때문에 마음먹고 봐야 하는 영화인데, 그럴 가치는 충분히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