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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까지 간다 - 고건수가 스스로 파놓은 구덩이의 깊이

by woohss003 2026. 6. 8.

영화 '끝까지 간다' 공식 포스터

넷플릭스에서 이 영화를 다시 봤다. 처음 봤을 때는 그냥 잘 만든 한국 스릴러 정도로 기억하고 있었는데, 다시 보니까 Kim Seong-hun 감독이 이 영화를 얼마나 치밀하게 설계했는지가 다르게 보였다. 2014년 작품이고 이선균, 조진웅이 주연이다. 설정은 단순하다. 어머니 장례식 날 귀가하던 형사 고건수(이선균)가 실수로 사람을 치는 교통사고를 낸다. 돌이킬 수 없다고 판단한 그는 어머니 관 속에 시신을 숨기고 묻어버린다. 그리고 그걸 목격한 누군가가 나타난다. 이게 전부인데, 이 한 가지 잘못된 선택이 영화 내내 스노볼처럼 굴러가면서 걷잡을 수 없이 커진다. 주인공이 점점 더 깊은 수렁으로 스스로 걸어 들어가는 걸 보면서 손에 땀을 쥐게 만드는 영화다.

장르의 문법을 비트는 방식

이 영화에서 가장 흥미로웠던 건 주인공이 형사라는 설정이다. 보통 범죄 스릴러에서 형사는 진실을 쫓는 사람이다. 그런데 이 영화의 형사는 진실을 덮으려는 사람이다. 고건수는 자기 직업상 증거를 어떻게 조작하는지, 사건 현장을 어떻게 처리하는지를 누구보다 잘 안다. 근데 그 지식이 그를 구원하지 못한다. 오히려 더 깊이 파고들게 만든다. 알면 알수록 더 많이 덮어야 하고, 덮을수록 더 많은 게 드러날 위기에 처한다. 이 역설이 이 영화의 긴장 구조를 만드는 핵심이다.

그리고 영화는 고건수를 단순한 피해자로 그리지 않는다. 그가 처음 사고를 낸 건 실수였지만, 그 이후의 선택들은 전부 그가 내린 것이다. 숨길 수 있었던 순간에 숨기는 쪽을 택하고, 고백할 수 있었던 순간에 덮는 쪽을 택한다. 관객은 그가 더 나쁜 선택을 할 때마다 그 선택이 이해는 되면서도 그게 또 다른 위기의 씨앗이 된다는 걸 안다. 그 불안한 동조가 이 영화를 보는 내내 이어진다.

어두운 차 안에서 남자가 핸드폰을 손에 쥔 채 날카롭게 주변을 살피고 있는 장면

이선균이 쌓아올린 공포

이선균의 연기를 이야기하지 않을 수가 없다. 고건수는 영화 내내 거의 혼자 있는 시간이 많다. 좁은 차 안에서, 묘지에서, 병원 복도에서. 그 시간들을 이선균이 어떻게 채우는지가 이 영화의 질감을 만든다. 패닉 상태인데 겉으로는 침착하게 보여야 하는 인물 — 그 내부와 외부의 간극을 대사보다 몸으로 훨씬 더 많이 표현한다. 손이 떨리는 정도, 눈이 잠깐 흔들리다 다시 잡히는 순간, 숨을 참고 다음 행동으로 넘어가는 찰나. 거창한 감정 폭발 없이 쌓아가는 긴장감이 이 배우가 이 영화에서 제일 잘 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조진웅이 연기한 박창민은 이 영화의 다른 축이다. 고건수를 쥐고 흔드는 인물인데, 처음 등장할 때부터 뭔가 어긋나 있다는 느낌이 있다. 위협적이면서도 어딘가 유쾌한, 그 균형이 기묘하다. 조진웅 특유의 에너지가 이 역할에 딱 맞게 꽂혀 있어서, 그가 등장하는 장면마다 분위기가 달라진다. 두 사람이 마주하는 장면들이 이 영화에서 제일 팽팽한 순간들인데, 둘 다 상대방이 얼마나 알고 있는지 가늠하면서 동시에 자기가 얼마나 모르는지를 숨겨야 하는 처지라 그 심리 게임이 꽤 정교하다.

연출이 만들어내는 압박의 리듬

김성훈 감독의 연출에서 기억에 남는 건 공간과 시간을 다루는 방식이다. 영화의 상당 부분이 밤이고, 좁은 공간이다. 차 안, 묘지, 병원 지하. 거기서 카메라가 인물을 아주 가까이 따라붙는다. 클로즈업이 많은데, 그게 숨막히는 느낌을 만들어낸다. 인물과 관객 사이의 거리를 없애버리는 방식이다. 그리고 편집이 빠르지 않다. 오히려 어떤 장면들은 의도적으로 길게 늘인다. 고건수가 뭔가를 처리하는 과정을 끊지 않고 따라가면서, 그 시간이 얼마나 지옥 같은지를 관객이 함께 버티게 만든다.

음악도 그 방식과 일치한다. 과하게 깔지 않는다. 음악이 없는 구간에 오히려 소리들이 더 날카롭게 들린다. 삽이 땅에 닿는 소리, 차 엔진 소리, 빗소리. 이 영화가 만들어내는 긴장이 음악이 아니라 소리의 질감에서 나온다는 걸 두 번째로 볼 때 훨씬 더 뚜렷하게 알아챘다.

흐린 하늘을 배경으로 한 남자가 다른 남자의 머리에 총을 겨누고, 상대는 두 손으로 총구를 막으려는 극한 대치 장면

한 가지 아쉬움

아쉬운 점이 없는 건 아니다. 후반부에서 액션 비중이 올라가면서 앞부분에서 쌓아온 심리적 밀도가 조금 흐트러지는 느낌이 있다. 중반까지는 심리 스릴러에 가까운 텐션인데, 후반으로 갈수록 장르적 쾌감 쪽으로 방향이 기운다. 그게 나쁜 선택은 아닌데, 개인적으로는 초중반의 조이는 긴장감이 끝까지 유지됐으면 더 좋았겠다 싶다. 후반부의 추격과 격투 장면들이 잘 만들어지긴 했는데, 거기서 앞에서 쌓아온 고건수의 내부 붕괴가 조금 희석된다.

그럼에도 한국 스릴러 중에서 이 영화를 건너뛰기는 어렵다. 설정의 단순함과 전개의 치밀함이 잘 맞물려 돌아가고, 두 주연 배우가 그 구조 안에서 각자의 역할을 정확하게 소화한다. 현재 넷플릭스에서 볼 수 있다. 한 번 보고 나서 초반 장면들을 다시 돌려보면 감독이 얼마나 꼼꼼하게 설계해뒀는지가 보이는 영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