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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넷플릭스에서 봤다. 2004년작이고, 닉 카사베츠 감독에 라이언 고슬링과 레이첼 맥아담스가 주연이다. 솔직히 이 영화를 미루고 미루다가 이번에 처음 봤다. 제목과 명성은 워낙 익숙했는데, 막상 보기 전에는 그냥 잘 만든 멜로영화 정도로 예상했다. 보고 나니까 그 예상이 절반만 맞았다는 걸 알았다. 1940년대 시골 마을에서 시작된 노아와 앨리의 첫사랑, 그리고 신분 차이로 인한 이별과 재회를 다룬 이야기다. 그런데 이 영화의 진짜 무게는 그 로맨스에 있지 않다. 현재 시점에서 한 노인이 요양원에서 다른 노인에게 이 이야기를 들려주는 액자식 구조, 그 구조가 영화 후반부에 어떤 의미를 갖는지 알게 되는 순간 이 영화에 대한 인상이 완전히 바뀌었다.

    전형적인 첫사랑 서사가 가진 함정과 그걸 비켜가는 방식

    초반 40분 정도는 솔직히 익숙한 클리셰들의 연속이다. 가난한 목수 청년과 부잣집 딸, 첫눈에 반함, 부모의 반대, 비 오는 날의 키스. 니콜라스 스파크스 원작이라는 걸 알고 보면 이 익숙함이 의도된 거라는 생각도 든다. 그런데 나는 이 구간을 보면서 계속 의구심이 들었다. 이 영화가 단순히 잘생긴 두 배우를 내세운 로맨스라면, 왜 이렇게 오랫동안 사람들 입에 오르내릴까. 그 답은 영화 후반부, 현재 시점의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펼쳐지면서 나온다.

    요양원에서 한 노인(제임스 가너)이 치매를 앓는 노부인(지나 롤랜즈)에게 매일 같은 이야기를 읽어준다. 처음엔 이게 단순한 액자식 장치인 줄 알았다. 그런데 영화가 진행될수록 이 두 사람이 누구인지가 드러나면서, 앞서 본 1940년대 로맨스가 완전히 다른 무게를 갖게 된다. 이 구조적 반전을 알고 다시 첫 장면부터 떠올려보면, 영화가 처음부터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는 걸 깨닫는다. 사랑 이야기가 아니라 기억과 상실에 대한 이야기였던 것이다.

    1940년대풍 거리에서 빨간 원피스를 입은 여자가 아이스크림콘을 들고 웃고 있고, 옆의 남자도 함께 웃으며 걷고 있다

    치매라는 소재를 다루는 방식에 대해

    이 영화에서 내가 가장 깊게 생각하게 된 부분이 여기다. 노부인이 치매로 자신의 인생 전체를, 심지어 남편조차 알아보지 못하는 상태에서, 그 남편이 매일 그들의 이야기를 읽어주는 행위. 이게 단순한 신파적 장치로 쓰였다면 이 영화는 훨씬 가벼워졌을 거다. 그런데 영화는 이 상황의 잔인함을 의외로 정직하게 다룬다. 노인이 아내에게 이야기를 읽어줄 때마다, 아주 잠깐씩 그녀가 기억을 되찾는 순간들이 있다. 그 순간이 짧다는 게, 그리고 곧 다시 사라진다는 게 이 영화에서 가장 마음을 무겁게 만드는 부분이었다.

    치매를 다루는 영화들이 종종 빠지는 함정이 있다. 병을 극복 가능한 장애물처럼 그리거나, 반대로 지나치게 절망적으로만 그리는 것. 이 영화는 그 중간 어딘가에 있다. 노인은 매일 실패할 걸 알면서도 다시 시도한다. 그게 희망적이라기보다는, 사랑이라는 게 결국 보답을 바라지 않고 반복하는 행위라는 걸 보여주는 방식 같았다. 나는 이 부분을 보면서 노아라는 인물을 처음 시작했던 낭만적인 청년이 아니라, 끝까지 약속을 지키는 한 사람으로 다시 보게 됐다.

    라이언 고슬링과 레이첼 맥아담스, 그리고 두 노년 배우

    젊은 시절의 노아와 앨리를 연기한 라이언 고슬링과 레이첼 맥아담스는 이 영화로 커리어의 중요한 발판을 마련했다고 알려져 있다. 실제로 두 사람의 케미스트리가 화면에서 분명하게 느껴진다. 다만 나는 이 영화에서 더 인상 깊었던 건 제임스 가너와 지나 롤랜즈 쪽이었다. 젊은 연인의 뜨거운 감정보다, 늙은 부부가 보여주는 절제된 슬픔이 더 오래 마음에 남았다. 특히 지나 롤랜즈가 아주 짧은 순간 기억이 돌아왔을 때 보여주는 표정 변화, 그 미묘한 차이를 연기로 표현하는 게 쉬운 일이 아닐 텐데, 그 장면들에서 이 배우의 내공이 느껴졌다.

    호숫가 나무 벤치에 나란히 앉은 노인 부부, 남자가 책을 읽어주고 여자는 그 옆에서 조용히 듣고 있다

    신분 차이라는 설정이 1940년대 미국과 맞물리는 지점

    이 영화의 배경이 1940년대라는 게 단순한 시대 설정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노아의 가난한 노동자 집안과 앨리의 부유한 사업가 집안 사이의 격차, 그리고 전쟁이 두 사람을 갈라놓는 방식. 이게 단순히 로맨스의 장애물로만 기능하지 않는다. 전후 미국 사회에서 계급이 결혼과 사랑에 얼마나 직접적으로 개입했는지를 영화가 배경처럼 깔아두고 있다. 앨리의 어머니가 노아의 편지를 숨기는 장면도 단순한 악역의 행동이 아니라, 그 시대 부모들이 자녀의 결혼을 계급 유지의 수단으로 봤던 현실을 반영한다. 영화가 이 맥락을 노골적으로 설명하지는 않지만, 알고 보면 그 시대적 압박이 두 사람의 갈등 곳곳에 스며있다는 게 보인다.

    거센 빗속에서 남자가 여자를 안아 올린 채 서로의 얼굴을 가까이 마주 보고 있는 장면, 두 사람 모두 비에 흠뻑 젖어 있다

    이 영화와 잘 맞는 사람 / 이 영화와 맞지 않는 사람

    전형적인 로맨스 서사에 거부감이 있는 사람이라면 초반부가 다소 진부하게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그 진부함을 넘어서 후반부까지 보면, 이 영화가 단순한 첫사랑 이야기가 아니라는 걸 알게 된다. 나는 개인적으로 이 영화를 가볍게 보고 운 적이 별로 없는 편인데, 마지막 부분에서는 예상보다 훨씬 깊게 가라앉았다. 사랑을 시작하는 이야기보다 사랑을 끝까지 지키는 이야기에 더 마음이 가는 사람이라면, 이 영화가 가진 진짜 힘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현재 넷플릭스와 왓챠에서 모두 구독으로 볼 수 있다. 위에 정리한 플랫폼 중 구독 중인 곳에서 바로 틀 수 있다. 혼자 볼 때보다 누군가와 함께 보고 영화가 끝난 뒤 한동안 말없이 있게 되는 종류의 영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