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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행 - KTX라는 밀폐 공간이 만든 한국형 재난의 문법

by woohss003 2026. 5. 9.

영화 '부산행' 공식 포스터

처음 봤을 때가 개봉 당시였는데, 극장을 나오면서 다리가 약간 풀렸던 기억이 있다. 두 번째로 넷플릭스에서 다시 봤는데 긴장감이 여전히 살아 있었다. 2016년 연상호 감독의 첫 실사 영화이자 1,156만 명을 동원한 작품. 공유, 마동석, 정유미, 김수안이 출연한다. 한국 좀비 영화의 기준점 같은 작품이라는 말이 과하지 않다. 배경이 달리는 KTX 안이라는 설정 하나로 이 영화의 긴장감은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작동한다. 탈출구가 없다는 것, 칸과 칸 사이만 넘어가도 생사가 갈린다는 것. 그 물리적 조건이 이 영화를 처음부터 끝까지 숨막히게 만드는 핵심이다.

KTX라는 공간이 하는 일

열차라는 공간은 탈출을 원천 차단한다. 창문은 열리지 않고, 앞뒤로만 이동할 수 있고, 칸마다 문 하나가 생사를 가른다. 이 설정이 만들어내는 압박감이 이 영화의 진짜 힘이다. 비슷한 시기 해외 좀비물과 비교해도 이 물리적 조건을 이렇게 영리하게 활용한 영화는 많지 않다. 감염자들이 어두운 곳에서 잘 못 움직인다는 설정도 터널 장면에서 기막히게 활용된다. 터널 씬은 이 영화 전체에서 가장 잘 만들어진 구간 중 하나다.

현재 넷플릭스와 디즈니플러스에서 구독으로 볼 수 있다. LG U+ TV 셋톱박스에서도 VOD 검색이 가능하다. 서비스 여부는 계약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 있으니 최신 여부는 각 앱에서 직접 확인하는 게 정확하다.

KTX 열차 통로에서 팔에 랩을 감은 상화가 앞을 바라보며 서 있고, 뒤에 석우가 야구 방망이를 든 채 따라오는 장면

캐릭터들이 살아 있는 이유

재난 영화는 캐릭터가 납작하면 금방 무너진다. 이 영화가 버티는 이유 중 하나는 주요 인물들이 각자 이유 있게 그려진다는 점이다. 공유가 연기한 석우는 처음엔 자기 딸밖에 모르는 이기적인 인물로 시작하는데, 이 캐릭터가 변화하는 과정이 설득력 있다. 갑자기 영웅이 되는 게 아니라 상황에 밀리면서 조금씩 바뀐다. 마동석이 연기한 상화는 이 영화에서 관객이 숨 쉬는 공간을 만들어주는 캐릭터다. 강하고 직선적이고 군더더기가 없다. 상화가 등장하는 장면마다 긴장이 잠깐씩 풀린다. 그게 이 영화의 리듬을 만든다.

김의성이 연기한 용석은 이 영화의 악역인데, 극단적으로 이기적인 인물이다. 현실에서도 재난 상황이 되면 저런 사람이 반드시 나온다는 걸 알기 때문에 이 캐릭터가 불편하면서도 납득이 된다. 다만 용석이 너무 단순하게 악역으로만 소비된다는 아쉬움은 있다. 좀 더 입체적으로 그렸으면 더 무서웠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통행제한 바리케이드 앞에 수안이 가방을 꼭 끌어안고 홀로 서 있는 장면, 배경으로 혼란스럽게 도망치는 사람들이 보인다

한국 좀비물의 시작점으로서

부산행이 나온 이후 한국에서 좀비를 소재로 한 콘텐츠가 쏟아졌다. 킹덤, 지금 우리 학교는, 기타 여러 시리즈들. 그 흐름의 시작점에 이 영화가 있다. 단순히 흥행했다는 게 아니라, 좀비라는 장르를 한국적 정서와 사회적 맥락에 끼워 넣는 방법을 보여줬다는 점에서 그렇다. 이기적인 자본가, 사회적 약자의 희생, 집단 내 배신. 이 영화의 갈등 구조는 좀비보다 인간이 더 무섭다는 걸 꽤 직접적으로 말한다.

아쉬운 지점도 분명히 있다. 감염 초기 상황이 너무 빠르게 처리되고, 바이러스 발생 원인에 대한 설명이 너무 짧다. 그리고 후반부로 갈수록 감정 신이 조금 과해지는 느낌이 있다. 눈물을 끌어내려는 의도가 노골적으로 느껴지는 구간이 있어서, 그 직전까지 쌓아온 긴장감이 조금 흐트러진다. 한 번 더 보면 그 부분이 더 눈에 띈다. 그럼에도 한국 재난 액션 장르에서 이 영화를 건너뛰기는 어렵다. 넷플릭스나 디즈니플러스 구독 중이라면 위에 정리한 플랫폼에서 바로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