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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격자 - 나홍진이 데뷔작에서 이미 보여준 것

by woohss003 2026. 6. 4.

넷플릭스에서 다시 봤다. 처음 봤을 때가 개봉 당시였는데, 그때는 그냥 긴장감에 압도됐다. 다시 보니까 이 영화가 얼마나 정교하게 만들어진 데뷔작인지가 더 선명하게 보였다. 2008년 나홍진 감독의 장편 데뷔작으로 김윤석과 하정우가 주연이다. 당시 제작비 26억 원으로 만들어서 약 502만 관객을 동원했다. 출장안마소를 운영하는 전직 형사 중호가 연쇄 살인범 영민을 쫓는 이야기인데, 이 단순한 설명이 이 영화의 복잡함을 전혀 담지 못한다.

볼 수 있는 곳

현재 넷플릭스에서 구독으로 볼 수 있고, 왓챠에서도 확인 가능하다. LG U+ TV 셋톱박스에서도 VOD로 검색해볼 수 있다. 서비스 여부는 계약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 있으니 최신 여부는 직접 앱에서 확인하는 게 정확하다.

영화 '추격자' 공식 포스터

이 영화의 주인공은 선한 사람이 아니다

추격자를 처음 보는 사람이 가장 먼저 불편하게 느끼는 건 주인공 중호가 좋은 사람이 아니라는 점이다. 출장안마소를 운영하고, 여성들을 착취하며 생계를 이어가는 인물이다. 그가 미진을 찾아 나서는 이유도 처음엔 순수하지 않다. 돈 때문에, 아니면 여자를 잃으면 안 된다는 계산 때문에. 근데 영화가 진행되면서 이 복잡한 동기가 조금씩 달라지는 걸 김윤석이 섬세하게 담아낸다. 중호가 미진을 찾아야 하는 이유가 영화 후반부에서 처음과 달라져 있다는 걸 보고 나서야 알게 된다.

이 설정이 이 영화를 단순한 스릴러와 다르게 만든다. 선한 영웅이 악당을 쫓는 구조가 아니다. 그 자신도 시스템 밖에서 살아온 사람이 또 다른 극단의 인물을 쫓는다. 그 도덕적 불편함이 이 영화 전체를 관통한다. 관객은 중호를 응원하면서도 중호가 어떤 사람인지를 잊을 수 없다.

차 안에서 얼굴에 멍이 든 지영민이 검은 모자를 쓴 채 상대를 무표정하게 바라보는 클로즈업 장면

하정우가 만든 지영민이라는 인물

이 영화에서 하정우가 연기한 지영민은 한국 영화 역사에서 손꼽히는 빌런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무섭게 만드는 방식이 독특하다. 악을 드러내거나 강조하지 않는다. 오히려 너무 평범하게 행동한다. 경찰서에서 살인을 자백하면서도 표정이 거의 없다. 심문을 받으면서 음료수를 마신다. 그 무감각함이 어떤 과장된 악보다 더 불편하게 만든다. 하정우가 이걸 과장 없이 소화해냈다는 게 지금도 놀랍다.

이 영화 이후 나홍진 감독은 황해(2010), 곡성(2016)을 연출했는데, 세 영화를 다 보면 이 감독이 반복적으로 탐구하는 것이 보인다. 인간의 폭력성, 그리고 시스템의 무능. 추격자에서 이미 그 두 가지가 완성된 형태로 존재한다. 데뷔작인데 완성도가 이 정도라는 게 지금 돌아봐도 대단한 일이다.

경찰서 복도에서 중호가 긴장된 표정으로 앞을 응시하는 장면

이 영화가 만드는 분노의 정체

추격자를 보면서 관객이 느끼는 감정의 중심은 공포보다 분노에 가깝다. 그 분노가 어디서 오는지를 생각해보면 이 영화가 하는 말이 보인다. 살인범은 이미 잡혔다. 자백도 했다. 근데 물리적 증거가 없어서 48시간 안에 풀어줘야 한다. 그 48시간 동안 미진은 아직 살아있다. 그걸 아는 건 중호뿐이고, 경찰은 움직이지 않고, 시간은 간다. 이 구조가 이 영화에서 가장 잔인한 부분이다. 살인범의 폭력보다 시스템의 무능이 더 많은 것을 앗아간다는 것.

개인적으로 이 영화를 다시 보면서 가장 오래 생각하게 된 건 미진이라는 인물이었다. 살아남으려 끊임없이 버티는 사람인데, 이 영화에서 미진의 시점이 충분히 다뤄지지 않는다는 아쉬움이 있다. 이 영화가 중호의 시점으로 진행되기 때문에, 미진이 혼자 그 상황에서 어떻게 버티는지가 충분히 담기지 않는다. 그 부분이 이 영화의 한계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한국 범죄 스릴러 중에서 데뷔작으로 이만한 완성도를 보인 경우가 거의 없다는 건 사실이다. 넷플릭스나 왓챠 구독 중이라면 한 번쯤 볼 만하다. 다만 폭력적인 장면이 꽤 있으니 그 점은 감안하고 보는 게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