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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크리트 유토피아 - 살아남은 자들이 만든 규칙의 민낯

by woohss003 2026. 5. 5.

영화 "콘크리트 유토피아" 공식 포스터

대지진으로 서울이 폐허가 됐는데 황궁 아파트만 멀쩡하게 살아남는다는 설정에서 시작한다. 엄태화 감독이 연출한 2023년 작품으로, 이병헌, 박서준, 박보영이 주연을 맡았다. 재난 영화처럼 포장돼 있지만 실제로는 재난 상황에서 인간이 어떻게 변하는지, 공동체가 어떤 방식으로 작동하고 무너지는지를 들여다보는 영화다. 넷플릭스에서 봤는데, 초반 설정이 워낙 강렬해서 한 번 들어가면 쉽게 빠져나오기 어렵다.

황궁 아파트라는 무대

이 영화에서 아파트는 단순한 배경이 아니다. 폐허가 된 서울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은 건물이라는 설정 자체가 이미 한국 사회에서 아파트가 가지는 위상을 비틀고 있다. 입주민들이 외부 생존자들을 몰아내고 자기들만의 규칙을 만들어가는 과정이 처음엔 생존을 위한 합리적인 선택처럼 보인다. 근데 시간이 지날수록 그게 생존이 아니라 욕망과 배타성의 문제라는 게 드러난다. 그 과정이 불편하면서도 눈을 못 뗀다.

현재 넷플릭스와 웨이브에서 구독으로 볼 수 있고, 티빙에서도 확인해볼 수 있다. LG U+ TV 셋톱박스에서 VOD 검색도 가능하다. 서비스 여부는 계약 상황에 따라 바뀔 수 있으니 최신 여부는 각 앱에서 직접 확인하는 게 정확하다.

대지진으로 폐허가 된 서울 한복판에 황궁 아파트 103동만 홀로 서 있는 장면, 하늘은 어둡고 주변은 잔해로 가득하다

이병헌이 만든 영탁이라는 인물

이 영화를 이야기할 때 이병헌의 영탁을 빼놓을 수 없다. 카리스마 있는 악당도, 순수한 영웅도 아닌 인물인데 그 경계를 아슬아슬하게 걸어가는 연기가 이 영화의 긴장감을 만들어낸다. 영탁이 처음 등장할 때는 그냥 열정 있는 아저씨처럼 보이는데, 점점 무언가 어긋나 있다는 걸 느끼게 된다. 그 어긋남이 어디서 오는건지를 영화가 중반 이후에 천천히 드러내는 방식이 꽤 잘 짜여 있다.

박서준과 박보영이 연기한 민성과 명화 커플은 이 영화에서 관객의 시선을 대리하는 역할이다. 처음엔 아파트 규칙에 순응하다가 점점 불편함을 느끼는 과정이 자연스럽게 그려진다. 특히 명화의 선택들이 영화 후반부로 갈수록 중요하게 작동하는데, 박보영이 그 내면의 갈등을 조용하게 잘 담아냈다.

황궁 아파트 주민수칙이 적힌 칠판 앞에서 주민 대표가 확성기로 규칙을 낭독하고 영탁이 옆에 서 있는 장면

불편한 질문을 던지는 방식

이 영화가 흥미로운 건 선악을 단순하게 나누지 않는다는 점이다. 외부인을 막는 입주민들이 나쁜 사람들인가 하면, 꼭 그렇지도 않다. 자기 가족을 지키려는 사람들이고, 공동체의 규칙을 따르는 사람들이다. 근데 그 과정에서 인간이 얼마나 쉽게 배타적이 되는지, 공동의 적을 만들어서 내부 결속을 유지하는 방식이 얼마나 보편적인지를 영화가 꽤 날카롭게 보여준다. 영화를 보는 동안 나라면 어떻게 했을까, 라는 질문이 계속 따라온다.

개인적으로 이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건 잔치 장면이다. 폐허 속에서 아파트 주민들끼리 모여 노래하고 먹는 그 장면이 이상하게 쾌활하고, 그 쾌활함이 오히려 더 섬뜩하다. 이병헌이 거기서 아파트 노래를 부르는 장면은 이 영화 전체에서 제일 오래 기억에 남는다.

민성과 명화가 나란히 앉아 굳은 표정으로 앞을 바라보는 장면, 뒤로 다른 주민들이 보인다

아쉬운 점과 전체적인 감상

아쉬운 부분도 있다. 후반부에서 이야기가 조금 급하게 정리되는 느낌이 있다. 중반까지 쌓아온 긴장감과 복잡한 감정들이 결말에서 좀 더 여유 있게 풀렸으면 하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영탁의 비밀이 드러나는 방식이 너무 직접적이어서 오히려 여운이 줄어든다는 아쉬움도 있다. 그걸 조금 더 열어뒀으면 어땠을까 싶기도 했다.

그럼에도 한국 재난 영화 중에서 이만큼 사회적인 맥락을 비틀어서 보여주는 영화가 많지 않다. 아파트라는 소재를 이렇게 가져올 수 있다는 게 인상적이고, 이병헌이라는 배우가 이런 캐릭터를 이렇게 소화할 수 있다는 것도 새삼 놀랍다. 넷플릭스 구독 중이라면 충분히 볼 만한 영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