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목차
2021년 1월 1일, 그동안 일본 기준에 기초해 쓰던 전기설비기술기준의 판단기준이 한국전기설비규정, 즉 KEC로 전면 대체됐습니다. 국제표준인 IEC 60364에 맞춘 변화였지만, 시행 초기 현장은 상당히 혼란스러웠습니다. 저도 그 시기를 직접 겪었는데, 개정된 기준은 발표됐지만 정작 실무에 적용할 해설 자료나 구체적인 데이터가 부족해서 설계 반영 자체가 쉽지 않았습니다. 지금은 자료도 쌓이고 현장 적용 사례도 많아져 안정됐지만, 그 사이 어떤 기준이 어떻게 바뀌었는지 정리해두는 것이 여전히 중요합니다.
왜 KEC로 바뀌었나 — 개정의 배경
한국전기설비규정(KEC)이란 전기설비의 설계, 시공, 감리, 검사 및 유지관리에 적용되는 기술적 기준으로, 산업통상자원부 고시로 운영되는 법적 규정을 의미합니다. 기존에는 전기설비기술기준의 판단기준이 그 역할을 했는데, 이 기준이 일본 기준 체계에 기반하고 있어 국제표준과 적용 방식이 달랐습니다. 전력산업의 해외 진출을 위해서는 국제표준에 맞는 기술 체계가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형성됐고, IEC 60364 시리즈를 기반으로 한 KEC가 오랜 준비 기간을 거쳐 만들어졌습니다.
시행을 두 달 앞두고 설계업계에서 시행 연기 또는 병행 사용을 요청하는 탄원이 있었을 만큼 현장 준비는 충분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산업통상자원부는 예정대로 KEC를 시행하되 1년간 기존 판단기준을 병행 사용할 수 있도록 유예기간을 뒀습니다. 다만 이 기간에도 두 기준을 혼용해서 적용하는 것은 금지됐습니다. 저도 이 시기에 어떤 프로젝트는 옛 기준, 어떤 프로젝트는 새 기준으로 나눠 작업해야 했는데, 기준이 혼재된 그 시점이 가장 헷갈렸습니다.
- 2021년 1월 1일 — 전기설비기술기준의 판단기준을 한국전기설비규정(KEC)으로 전면 대체
- KEC는 IEC 60364 등 국제표준 체계를 기반으로 구성된 새로운 기술 규정
- 2021년 한 해는 기존 판단기준과 KEC 병행 사용 가능, 단 한 프로젝트 내 혼용은 금지
실무에 직접 영향을 준 핵심 변경 사항
KEC 개정에서 설계 실무에 가장 직접적으로 영향을 준 부분은 접지 방식 변경입니다. 접지(Earthing)란 전기 설비의 일부를 대지와 전기적으로 연결해 감전이나 화재를 방지하는 보호 방식을 의미합니다. 기존에는 1종, 2종, 3종, 특3종 접지로 구분했지만 KEC에서는 이 분류를 폐지하고 계통접지(TN, TT, IT) 방식과 함께 보호접지, 공통접지, 통합접지 개념으로 재편했습니다. 접지선 굵기 산정 방식도 함께 바뀌면서 설계 초기에는 기존 도면의 접지 표기를 어떻게 새 체계로 변환해야 하는지부터 혼란이 있었습니다.
허용전류 산정 기준도 크게 바뀌었습니다. KEC 232.5에서는 국제표준 방식에 따라 배선방식 분류(A1, A2, B1, B2, C 등)와 집합감소계수를 적용해 허용전류를 계산하도록 규정합니다. 기존 판단기준의 단순 표 대조 방식과 달리 시설 상태와 공사 방법을 먼저 분류한 뒤 그에 맞는 계산값을 적용해야 해서, 초기에는 어떤 배선방식이 어떤 분류번호에 해당하는지 참조표를 찾는 것부터 시간이 걸렸습니다. 저압의 범위와 전선 색상 표기 기준(L1, L2, L3, N, PE)도 이 시기에 국제표준에 맞춰 새로 정리됐습니다. 저압 전로의 절연성능 기준(KEC 132) 역시 절연저항 측정값 기준이 세분화되면서 기존 검사 방식과 차이가 생겼습니다.
- 접지 분류 폐지 — 1종·2종·3종·특3종 → 계통접지(TN/TT/IT) 및 보호·공통·통합접지 체계로 재편
- 허용전류 산정 — KEC 232.5에 따라 배선방식 분류 후 집합감소계수 적용 방식으로 변경
- 전선 색상 표기 — L1, L2, L3, N, PE로 국제표준 색상 체계 적용
- 저압 절연성능(KEC 132) — 절연저항 측정 기준값 세분화
개정 초기의 혼란과 지금의 상황
처음 KEC가 시행됐을 때 가장 힘들었던 건 자료 부족이었습니다. 전기공사협회나 한국전기안전공사에서도 명확한 적용 기준이 바로 나오지 않았고, 설계에 반영하려 해도 참고할 만한 실무 데이터가 없었습니다. 접지 계통을 어떻게 표기해야 하는지, 허용전류 계산을 어떤 표로 해야 하는지 자료를 찾는 데만 한참이 걸렸던 기억이 납니다. 감리 측에서도 새 기준 해석이 제각각이라 같은 사안을 두고 프로젝트마다 다른 지적을 받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지금은 상황이 많이 달라졌습니다. KEC 시공 가이드북 같은 해설서가 나오고, 여러 설계 사무소와 협회에서 적용 사례를 공유하면서 실무 데이터가 충분히 쌓였습니다. 저 역시 지금은 KEC 기준으로 접지나 허용전류를 산정하는 게 자연스러워졌고, 예전 판단기준으로 돌아가라고 하면 오히려 더 헷갈릴 것 같습니다. 다만 이번 경험으로 느낀 건, 이런 대규모 기준 개정을 할 때는 시행 전에 관계 부처와 유관기관이 명확한 해설 자료와 교육을 충분히 준비한 뒤 배포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기준만 먼저 발표하고 해설과 교육이 늦게 따라오면, 그 공백을 현장 실무자들이 혼란과 시행착오로 메우게 됩니다.
- 시행 초기 자료 부족 — 전기공사협회·전기안전공사 모두 명확한 적용 기준 제시 지연
- 현재는 KEC 시공 가이드북 등 해설서와 실무 적용 사례가 충분히 축적된 상태
- 향후 대규모 기준 개정 시 시행 전 해설 자료·교육 선행 배포가 현장 혼란을 줄이는 핵심
KEC 개정은 방향 자체는 맞았다고 생각합니다. 국제표준에 맞춰야 해외 진출이나 신기술 도입이 수월해지는 건 분명합니다. 다만 그 변화를 현장에 전달하는 방식이 조금 더 체계적이었다면 초기 혼란은 훨씬 줄었을 겁니다. 지금 이 기준을 익히는 후배들은 자료가 충분한 환경에서 시작하는 셈이니, 그 점은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