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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포 선라이즈 - 빈에서의 하룻밤, 대화가 만드는 친밀함

넷플릭스에서 봤다. 1995년 리처드 링클레이터 감독 작품이고, 이단 호크와 줄리 델피가 제시와 셀린을 연기한다. 설정은 단순하다. 기차 안에서 우연히 만난 두 사람이 함께 빈에서 내려 하룻밤을 걷고 이야기한다. 그게 전부다. 사건이 없다. 갈등도 없다. 반전도 없다. 그냥 두 사람이 걷고 얘기하는 101분이다. 그런데 그게 이 영화를 약하게 만들지 않는다. 오히려 이 단순함이 이 영화가 30년 가까이 사람들에게 기억되는 이유다. 처음 봤을 때 나이와 상황에 따라 전혀 다른 영화처럼 느껴지는 종류이기도 하다.대화가 서사를 대신하는 영화이 영화에는 플롯이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두 사람이 카페에 앉고, 강가를 걷고, 묘지를 지나고, 놀이공원에서 시간을 보낸다. 그 사이에 주고받는 대화들이 영화 전체를 채운..

카테고리 없음 2026. 6. 15. 18:05
라이프 오브 파이 - 두 가지 이야기 중 어느 쪽을 믿을 것인가

디즈니플러스에서 다시 봤다. 처음 봤을 때는 시각적인 압도감에 집중했는데, 두 번째로 보니 이 영화가 실제로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가 더 선명하게 보였다. 2012년 이안 감독이 얀 마텔의 동명 소설을 영화화한 작품이다. 인도 소년 파이가 가족과 함께 캐나다로 이민을 가던 중 폭풍우로 화물선이 침몰하고, 벵골 호랑이 리처드 파커와 함께 구명보트에서 227일을 표류하는 이야기. 줄거리만 보면 생존 어드벤처처럼 들리는데, 실제로 이 영화가 하려는 이야기는 그 바깥에 있다. 그걸 알고 보는 것과 모르고 보는 것, 체감이 꽤 다른 영화다.이안이 불가능한 원작을 다룬 방식라이프 오브 파이는 오랫동안 영화화가 불가능한 소설로 여겨졌다. 대부분의 이야기가 망망대해 구명보트 위에서 벌어지고, 주인공의 동반자가 실제 호랑..

카테고리 없음 2026. 6. 14. 11:26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 - 공상과 현실 사이, 벤 스틸러의 조용한 도전

디즈니플러스에서 봤다. 2013년 벤 스틸러가 감독과 주연을 동시에 맡은 작품인데, 그의 필모그래피에서 꽤 이질적인 위치에 있는 영화다. 코미디 배우로 알려진 사람이 만든 잔잔하고 서정적인 어드벤처 드라마. 처음엔 그 조합이 잘 상상이 안 됐는데, 막상 보면 의외로 잘 맞는다. 주인공 월터 미티(벤 스틸러)는 라이프지 사진부에서 16년째 네거티브 필름을 관리하는 사람이다. 해본 것도, 가본 곳도 없지만 상상 속에서만큼은 매번 주인공이 된다. 그러다 잡지 폐간을 앞두고 마지막 표지 사진 필름이 사라지면서 실제로 세상 밖으로 나가게 된다는 이야기다. 감동을 억지로 끌어내려 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이 영화를 좋게 봤는데, 동시에 아쉬운 지점도 분명히 있다.상상 시퀀스가 만드는 리듬이 영화의 초반부는 월터의 공상..

카테고리 없음 2026. 6. 13. 15:20
원더 - 어기의 얼굴보다 어기를 둘러싼 사람들의 이야기

넷플릭스에서 봤다. 2017년 스티븐 크보스키 감독 작품이고, 선천성 안면 기형을 가진 열 살 소년 어기(제이콥 트렘블레이)가 처음으로 학교에 입학하는 이야기다. 스티븐 크보스키가 월플라워를 연출한 감독이라는 걸 알고 봤는데, 두 영화 사이에 공통된 감각이 있다. 성장기 아이들의 내면을 섣불리 정리하거나 교훈으로 마무리 짓지 않으려는 태도. 원더는 표면적으로는 따뜻하고 밝은 가족 영화처럼 보이는데, 안으로 들어가면 꽤 여러 층위의 이야기가 겹쳐 있다. 그걸 알고 보면 이 영화가 단순한 감동 드라마와 어떻게 다른지가 보인다.어기만의 이야기가 아닌 구조이 영화에서 내가 가장 인상적으로 본 건 서사 구조 자체다. 어기의 시점으로만 이야기가 진행될 거라 생각했는데, 영화는 중간중간 누나 비아(이자벨라 비도빅),..

카테고리 없음 2026. 6. 12. 15:16
그린 마일 - 선함이 아무것도 구하지 못할 때

왓챠에서 찾아봤다가 없어서 결국 웨이브에서 대여해서 봤다. 3시간 9분짜리 영화를 한 번 틀면 끝까지 보게 된다는 게 이 영화의 첫 번째 특징이다. 1999년 작품이고, 프랭크 다라본트 감독이 스티븐 킹의 동명 소설을 각색했다. 쇼생크 탈출과 같은 감독, 같은 원작자의 조합이라 비교가 자연스럽게 따라붙는 영화인데, 두 작품을 나란히 놓으면 다라본트가 스티븐 킹의 어떤 부분을 일관되게 좋아하는지가 보인다. 극한의 상황 속에서 인간이 어디까지 선해질 수 있는가, 그리고 그 선함이 세상을 바꾸는가. 그린 마일은 그 질문에 쇼생크보다 훨씬 어두운 답을 내놓는다.존 커피라는 존재가 만드는 불편함존 커피(마이클 클라크 던컨)는 처음 등장할 때부터 뭔가 맞지 않는다. 덩치는 압도적으로 크고, 죄목은 어린 쌍둥이 여아..

카테고리 없음 2026. 6. 10. 12:57
굿 윌 헌팅 - 재능보다 먼저 해결해야 했던 것

1997년 작품인데 왓챠에서 다시 꺼내봤다. 처음 봤을 때는 천재 소년의 성장 이야기 정도로 기억하고 있었는데, 다시 보니까 이 영화가 실제로 무엇에 대한 영화인지가 더 선명하게 보였다. 굿 윌 헌팅은 재능에 대한 영화가 아니다. 상처를 인정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그리고 그게 왜 필요한지에 대한 영화다. 맷 데이먼과 벤 애플렉이 각본을 쓰고 맷 데이먼이 주연을 맡았다. 로빈 윌리엄스가 심리치료사 숀 역으로 조연상을 받았고, 두 사람의 각본도 아카데미 수상작이다. 수상 이력을 나열하는 게 이 영화를 설명하는 좋은 방법은 아니지만, 그만큼 많은 사람들이 이 영화에서 뭔가를 건져갔다는 얘기이기도 하다.윌이 천재라는 사실이 이 영화의 핵심이 아닌 이유윌 헌팅(맷 데이먼)은 MIT 복도 칠판에 걸린 대..

카테고리 없음 2026. 6. 9. 1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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