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분류 전체보기90

비포 선셋 - 9년이 지난 뒤, 두 사람이 말하지 못한 것들 비포 선라이즈를 보고 나서 바로 이어서 봤다. 프라임 비디오에서 대여해서 봤는데, 79분짜리 영화인데도 다 보고 나서 한동안 멍하게 있었다. 2004년 작품이고 리처드 링클레이터가 다시 연출했다. 이단 호크와 줄리 델피가 각본에 참여했다는 점이 전작과 다른데, 그 차이가 화면 안에서 실제로 느껴진다. 1995년 빈에서 하룻밤을 보냈던 제시와 셀린이 9년 만에 파리에서 다시 만난다. 제시는 그 경험을 소설로 썼고, 파리 북 투어 마지막 날 서점에서 셀린을 마주친다. 그리고 비행기 출발 전까지 남은 몇 시간을 함께 걷는다. 설정만 보면 전작과 구조가 같다. 그런데 완전히 다른 영화다.9년이라는 시간이 대화에 쌓인 방식비포 선라이즈의 두 사람은 젊었다. 자기 생각이 있고 호기심이 넘쳤지만, 그 대화들은 아직 .. 2026. 6. 16.
비포 선라이즈 - 빈에서의 하룻밤, 대화가 만드는 친밀함 넷플릭스에서 봤다. 1995년 리처드 링클레이터 감독 작품이고, 이단 호크와 줄리 델피가 제시와 셀린을 연기한다. 설정은 단순하다. 기차 안에서 우연히 만난 두 사람이 함께 빈에서 내려 하룻밤을 걷고 이야기한다. 그게 전부다. 사건이 없다. 갈등도 없다. 반전도 없다. 그냥 두 사람이 걷고 얘기하는 101분이다. 그런데 그게 이 영화를 약하게 만들지 않는다. 오히려 이 단순함이 이 영화가 30년 가까이 사람들에게 기억되는 이유다. 처음 봤을 때 나이와 상황에 따라 전혀 다른 영화처럼 느껴지는 종류이기도 하다.대화가 서사를 대신하는 영화이 영화에는 플롯이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두 사람이 카페에 앉고, 강가를 걷고, 묘지를 지나고, 놀이공원에서 시간을 보낸다. 그 사이에 주고받는 대화들이 영화 전체를 채운.. 2026. 6. 15.
라이프 오브 파이 - 두 가지 이야기 중 어느 쪽을 믿을 것인가 디즈니플러스에서 다시 봤다. 처음 봤을 때는 시각적인 압도감에 집중했는데, 두 번째로 보니 이 영화가 실제로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가 더 선명하게 보였다. 2012년 이안 감독이 얀 마텔의 동명 소설을 영화화한 작품이다. 인도 소년 파이가 가족과 함께 캐나다로 이민을 가던 중 폭풍우로 화물선이 침몰하고, 벵골 호랑이 리처드 파커와 함께 구명보트에서 227일을 표류하는 이야기. 줄거리만 보면 생존 어드벤처처럼 들리는데, 실제로 이 영화가 하려는 이야기는 그 바깥에 있다. 그걸 알고 보는 것과 모르고 보는 것, 체감이 꽤 다른 영화다.이안이 불가능한 원작을 다룬 방식라이프 오브 파이는 오랫동안 영화화가 불가능한 소설로 여겨졌다. 대부분의 이야기가 망망대해 구명보트 위에서 벌어지고, 주인공의 동반자가 실제 호랑.. 2026. 6. 14.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 - 공상과 현실 사이, 벤 스틸러의 조용한 도전 디즈니플러스에서 봤다. 2013년 벤 스틸러가 감독과 주연을 동시에 맡은 작품인데, 그의 필모그래피에서 꽤 이질적인 위치에 있는 영화다. 코미디 배우로 알려진 사람이 만든 잔잔하고 서정적인 어드벤처 드라마. 처음엔 그 조합이 잘 상상이 안 됐는데, 막상 보면 의외로 잘 맞는다. 주인공 월터 미티(벤 스틸러)는 라이프지 사진부에서 16년째 네거티브 필름을 관리하는 사람이다. 해본 것도, 가본 곳도 없지만 상상 속에서만큼은 매번 주인공이 된다. 그러다 잡지 폐간을 앞두고 마지막 표지 사진 필름이 사라지면서 실제로 세상 밖으로 나가게 된다는 이야기다. 감동을 억지로 끌어내려 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이 영화를 좋게 봤는데, 동시에 아쉬운 지점도 분명히 있다.상상 시퀀스가 만드는 리듬이 영화의 초반부는 월터의 공상.. 2026. 6. 13.
원더 - 어기의 얼굴보다 어기를 둘러싼 사람들의 이야기 넷플릭스에서 봤다. 2017년 스티븐 크보스키 감독 작품이고, 선천성 안면 기형을 가진 열 살 소년 어기(제이콥 트렘블레이)가 처음으로 학교에 입학하는 이야기다. 스티븐 크보스키가 월플라워를 연출한 감독이라는 걸 알고 봤는데, 두 영화 사이에 공통된 감각이 있다. 성장기 아이들의 내면을 섣불리 정리하거나 교훈으로 마무리 짓지 않으려는 태도. 원더는 표면적으로는 따뜻하고 밝은 가족 영화처럼 보이는데, 안으로 들어가면 꽤 여러 층위의 이야기가 겹쳐 있다. 그걸 알고 보면 이 영화가 단순한 감동 드라마와 어떻게 다른지가 보인다.어기만의 이야기가 아닌 구조이 영화에서 내가 가장 인상적으로 본 건 서사 구조 자체다. 어기의 시점으로만 이야기가 진행될 거라 생각했는데, 영화는 중간중간 누나 비아(이자벨라 비도빅),.. 2026. 6. 12.
그린 마일 - 선함이 아무것도 구하지 못할 때 왓챠에서 찾아봤다가 없어서 결국 웨이브에서 대여해서 봤다. 3시간 9분짜리 영화를 한 번 틀면 끝까지 보게 된다는 게 이 영화의 첫 번째 특징이다. 1999년 작품이고, 프랭크 다라본트 감독이 스티븐 킹의 동명 소설을 각색했다. 쇼생크 탈출과 같은 감독, 같은 원작자의 조합이라 비교가 자연스럽게 따라붙는 영화인데, 두 작품을 나란히 놓으면 다라본트가 스티븐 킹의 어떤 부분을 일관되게 좋아하는지가 보인다. 극한의 상황 속에서 인간이 어디까지 선해질 수 있는가, 그리고 그 선함이 세상을 바꾸는가. 그린 마일은 그 질문에 쇼생크보다 훨씬 어두운 답을 내놓는다.존 커피라는 존재가 만드는 불편함존 커피(마이클 클라크 던컨)는 처음 등장할 때부터 뭔가 맞지 않는다. 덩치는 압도적으로 크고, 죄목은 어린 쌍둥이 여아.. 2026. 6. 10.